2015년 사이먼 래틀 경이 베를린 필하모니(BPO)를 지휘해서 녹음한 베트벤 교향곡 전집을 감상했다.
솔직히 말해서 썩 만족스럽지 않다. 분명 훌륭하고 아름다운 연주이지만, 지휘가 맘에 들지 않는다.
BPO의 연주는 놀랍만큼 정교하고 아름답고 세련되어 있다.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단체의 연주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놀라운 합주력과 음색, 정확한 박자와 정교한 표현 등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한동안 BPO 대신 다른 악단, 좀더 젊고 새로운 악단들을 많이 찾아들었지만, 역시 BPO는 어떤 면에서 대체불가능한 악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휘인가? 베토벤을 들었을 때마다 느끼는 감동 혹은 가슴뛰는 경험이 전혀 없었다.
3번과 5번, 그리고 9번 교향곡을 들었지만, 베토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한 울림이 없다. 매우 기계적이고 정교한 음악, 마치 인공지능이 지휘하는 듯한 연주가 놓여있다. 베토벤의 작품은 훌륭하지만, 지휘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
반면, 6번 전원은 매우 훌륭했다. 전원 교향곡의 감성과 느낌을 무척 잘 전달하고 있다. 최근 들었던 전원 교향곡 중에서 가장 좋았던 연주이다.
사이먼 래틀 경은 훌륭한 지휘자이다. 이번 전집에서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은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오히려 매우 높은 편이고 정교하고 깔끔하다. 마치 훌륭한 장인이 빚어낸 작품 같다. 하지만 장인의 수준이지, 열정 있는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나의 주관적 느낌이지만, 내 생각을 바꿀 일은 없을 듯 하다.
그의 다른 연주들을 다시 천천히 들어볼 생각이다. 래틀 경이 연주한 말러에서는 이런 감흥 없는 느낌은 없었으니까. 브람스나 다른 작품들에서는 다른 느낌이 날 수도 있다. 브루크너는 워낙 좋은 지휘가 많아서 아직 래틀 경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지는 않았다. 베토벤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앞으로 그의 베토벤은 안 들을 듯하다. 물론 빈필은 좀더 다르다고 하니..
물론 래틀 경의 지휘와 베토벤의 교향곡은 다르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래틀 경의 지휘 혹은 카라얀의 지휘에 상관없이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휘에 상관없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지휘자를 달리하면서 음악을 듣게 되면, 제일 좋은 것은 다양한 감성과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지휘자를 찾을 수 있으면 행운인 것이고…
시간이 될 때마다 열심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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